석선혜 ▶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계종 법륜왕사 주지 ▶사)서울문인문학회 고문
비가 오는 날에는 양철 지붕밑에서 차 한 잔, 두 잔, 석 잔 하다가 그래도 심심하면 술을 한잔 마셔봐라. 비가 오는 날 양철 지붕 밑에 들려오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빗줄기의 굵고 가는 빗방울 전주곡에 사방에서 리듬을 두드리며 감미롭게 들려온다. 빗소리 운율로 차 한 잔, 술 한 잔을 곁들여 시야에 펼쳐지는 자연과 동화가 되면 천하의 일품 진경을 즐기게 된다. 여름철 가랑비가 올 때 얇고 간단한 옷을 입고 비닐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가면 선녀의 날개옷 발걸음으로 내려앉는 가랑비 소나타가 빗발에 날리는 옷깃을 파고들어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우울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저 차분하게 밀려오는 회한을 쓸어내려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어 심금을 울린다.
차관에 우려진 차를 찻잔(茶盞)에 따르는데 잔의 7~8부 정도에서 차 따름을 그쳐 2~3부의 비인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그 비인 공간에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건강, 사랑, 도덕, 예술 등을 담아서 대접한다는 뜻이다. 꽉 채워서 먹기만 하면 매력이 도망가지 않겠는가? 음식도 그처럼만 하면 살찔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차관에 우린 찻물을 찻잔에 따를 때 나는 소리를 경적성(敬滴聲)이라고 하는데 찻물 떨어지는 소리를 받든다는 뜻이다. 다도미학에서 매력 있는 대목이다. 또 차관에 찻물이 쪼록쪼록 떨어지는 소리를 '이슬비 오는 날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소리', 마지막 끝맺음으로 똑똑 떨어지는 찻물 방울을 '솔잎 끝에 맺힌 단 이슬', 감로(甘露) 또, 차고픈 마음에 맺힌 제호미(醍醐味)라고 한다. 또 졸졸 흘러 떨어지는 소리를 '실개천에서 흐르는 물소리'라 한다.
맑은 물 떨어지는 소리가 산중 식구들과 노니는'옹달샘 연가'시를 소개한다.
방울물 똑똑똑
가없는 하늘을 담아
구름도 흘러가고
낮달도 흘러가고
바람이 산숲을 흔드니
나무들도 찾아오고
풀벌레도 찾아오고
나그네도 찾아오고
새소리
물소리
동무하여
목마른 길목 지키자네
차를 마실 때에는 차를 달이어 건네준 팽주에게 차를 잘 마시겠다는 인사를 말은 하지 않고 목례로만 드린 뒤에 차탁(茶托: 찻잔 받침) 위에 올려 낸 찻잔을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찻잔의 몸통을 가볍게 손끝으로 감싸 쥐고 가슴 중간(입에서 30cm 거리)에서 차 빛깔을 감상하고 다시 코앞 가까이(약 5~7cm 거리)하여 차 향기를 듣고 (聞香:문향) 입술에 가볍게 대고 작게 한 모금을 혀 위에 올려 굴리면서 맛을 음미(吟味)하는데 약 30초~1분 정도 즐기고 목 안으로 넘긴다. 향기를 맡는 것을 '듣는다'고 표현한 것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깊이 감상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 마심은 찻잔에 입술을 대고 마실 때에 한 모금이나 두 모금을 넘기고 세 모금 째에는 음미를 한다. 세 번째는 첫 번째나 두 번째처럼 똑같이 한다. 차 한 잔을 일반적으로 3번 나누어 마시는데 4번이나 5번으로 나누어 마실 수도 있다. 찻잔을 내려놓을 때는 차를 다 마신 뒤에 차탁에 내려놓는다. 차를 마시며 감상하는 것을 '즐긴다'고 격조 높게 표현한다. 차 빛깔, 향기, 맛과 차실 분위기와 차 얘기(茶談 :다담), 예술품 감상 등을 포함하여 즐긴다고 한 것이다. '차를 먹는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차는 식사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