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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희의 교육칼럼] “ 말만 하는 사람을 믿지 말라”
등록날짜 [ 2018년08월20일 15시33분 ]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같이 산책을 나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나무를 가르치면서 말했다.

저 나무에 올라가라

아들이 무서워서 올라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아버지는 괜찮다. 내가 있다"라며 타일렀다.

아버지의 성화에 나무 위에 올라간 아들에게 아버지는 뛰어내려 보라고 했다.

아들은 무섭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괜찮아! 아빠가 받아 줄게라며 안심을 시켰다.

이 말을 믿고 아들은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받아주기는커녕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져 아픔을 이기지 못하는 아들이 항의하며 말했다.

받아준다고 해 놓고는 왜 팔짱만 끼고 서 계세요.”

아들에게 아버지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알았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말만 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해!”

 

아무리 가까워도 말만 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라.

 

이 사람들은 실제로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 말만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행동을 하기 싫어서 말만 하는 경우'도 있고' 행동을 할 만한 능력이 안되어 말만 하는 경우'가 있다.

여하튼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말이 많다. 어떤 일을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그 일을 함께 하다 보면 더욱 그렇다. 사람 사이의 약속은 자신의 입장으로만 생각하거나 자신의 추측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명확히 말을 주고받고 나누어서 의견이 일치된 것을 문서화 한 것을 '계약(contract, 契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서로에게 지켜야 할 약속을 문서로 만드는 것이다. 왜 이러한 문서를 만드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약속을 지키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견 조절'이라는 절차가 있다.

'조절[調節, accommodation] '이라는 것은 사회적 과정(social process)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갈등적 또는 적대적 상황을 해결하지 않은 채 함께 생활하거나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상호 간의 긴장과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을 말한다. 조절은 실제적으로는 적대 감정이나 서로 이질적인 요인을 갖고 있으면서도 함께 일을 하고 생활하는 것이므로 갈등 완화(conflict-reducing) 기술의 하나이기도 하다(교육학 용어 사전, 1995).

따라서 그러한 상황에 있다면 조절이라는 절차를 통하여 의견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절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조절하는 대화 중에 서로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따라서 준비가 안된 자와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만남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약속에 대해서 어기는 것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약속도 되지 않은 말들을 가지고 생각을 하며 계속에서 결정되는 말이 다르면 자신이 생각과 일치될 때까지 다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언제간 말 실수하여 그렇다고 말할 때까지 하곤 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편협한 사고를 가진 경우가 많다.

특히나 '교육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한 경우가 많다. Harap(1967)은 교과지식, 교양 지식, 교육학적 지식 등으로 표현하고 있고, 학습지도의 기술, 동기유발의 기술, 학생 집단의 통제에 관한 기술, 학습 및 학습 집단의 구성에 관한 기술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Dreeben, 1970)

개인적인 노력, 즉 전문가적 행동을 위한 노력과 끊임없는 배움, 제도적인 측면으로는 교육 유인체계의 강화와 양질의 교원 양성 프로그램의 제고 및 교육의 여건 개선을 통해서 교육의 전문성을 제시하고 있다(한숙경, 2003) 많은 학자들은 교육 전문성을 논할 때 '끊임없는 노력'이란 단어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가르치는 일을 하는 학원의 강사들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에 대한 기준과 수준은 잃어버린 상태로 그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교육적 수준과 가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을 하고 있다는 행동에 주력하는 것이다. 자신의 성장할 방향보다 지금 달려가고 있는 속력의 힘만큼 빠르게 달려 나가길 원하는 것이 문제이다.

한 젊은이가 길을 가고 있었다.

땀을 흘리면서 길을 가는 젊은이를 보면서 나무에 앉아 부채질을 하던 노인이 물었다.

"자네 어디를 가려고 그렇게 열심히 가는가?"

젊은이가 답하길 "네 오늘 중에는 서울에 가려고 합니다."

그러자 노인은 "아 그 방향은 부산 가는 방향이야, 반대로 가야 서울에 도착하네"

그러자 젊은이는 이야기를 했다.

"어르신, 제가 얼마나 성실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 모르시죠?

저는 제가 생각한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에 도착할 겁니다."라고 말하고는 열심히 자신이 가던 방향으로 길을 가버렸다.

귀를 막고 옳은 소리도 듣지 못하면 바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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